전쟁론 1

2009/02/11 06:19
-전쟁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의지대로 남을 움직이게 하는 것일 뿐이다.-

승현은 막 밖으로 나온 참이다. 밖은 부옇게 밖아 온다. 그는 새벽 내내 이번 합병 건으로 회의를 떠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사장은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을 분위기다. 현희. 현희는 어떻게 있을지. 승현은 막 결혼한 자신의 아내를 떠올린다. 그녀도 화랑에서의 일 때문에 바쁘다고는 했었다. 요새는 만나자마자 서로의 몸을 탐하는데 바쁠 뿐이지, 옛날같은 전희도 없었다. 그녀가 혀로 해 주던 그 뜨거운 욕정의 시간도 이제는 사치였다.

담배를 한 대 문다. 저릿한 감촉이 목젖을 울린다. 한참만에 들이킨 연기 때문인지 머리속까지 어질어질해졌다.

"어이 현."

김가 부장이다. 옥상에 겨우 올라와 잠시나마 혼자 있는 여유를 누리려 했더니, 하고 승현은 속으로 한숨짓는다. 겉으로는 물론 웃을 도리밖에 없다.

"김부장님."

"어이. 뭘 그리 바쁘게 나가나? 난 또 집에라도 간다고. 자네 알지? 사장이 요새 좀 빡 돈 상태잖아. 그런데 현 팀장이 가버리면 또 안 되지. 걱정되서 어디있나 한참을 뒤졌네."

"아, 네."

"이 사람아. 다음부터는 어디 간다고 말 좀 하고 다녀. 에이, 핸폰도 안 갖고 말야."

"네. 죄송합니다."

"그래 그래. 내가 또 현 팀장 아껴서 이러잖아"

능글맞다. 김가부장이 원래 그렇잖은가하고 속으로 되뇌이면서도, 승현은 욕지기가 불쑥 솟아오름을 간신히 막고 있었다. 결국은 사장의 펀치백이 필요하다는 소리일 뿐. 더러운 일을 맡긴 경우가 한 두번이었던가. 현은 어쨌든 일그러진 웃음은 잃지 않으려 노력 중이었다.

"담배 있어?"

"네. 한 대 피시게요? 끊으신 줄 알았습니다."

"에이. 시팔. 끊을 뻔 했지. 끊을 뻔 했어. 딱 삼일만에. 누가 작심삼일 아니랄까봐 말야."

"네. 여기 불."

"쌩큐"

김가부장은 손가락을 휙 하고 날 향해 돌린다. 아마도 고맙다는 식의 '쿨'한 인사겠지. 승현은 라이터에 달린 조그만 부싯돌을 당겨 불을 붙여준다. 밤을 새서 머리가 더 어지럽다. 어쨌든 오늘의 합병 건을 잘 성사시키는게 능사다. 그리고 나면 현희도 볼 수 있겠지. 오늘 밤엔 일단 푹 자고. 내일은 그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행복한 일도 있다고, 승현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오늘 성사하는 합병 건은 전형적이다 하고 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어도, 확실히 많이들 예상해 왔던 일이었다. 건축과 제2금융권 간의 합병. 재벌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건실한 현무건설과 미림신용금고 사이의 건이었다. 이 건은 두 회사 모두에게 그런대로 이익을 남겨줄 것이다. 벌써 2년 전부터 물밑협상은 시작되었던 바이지만, 정작 수면위에서 주가 불리기를 해온 건 채 3개월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갑자기 합병 건이 급진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사장의 갑작스런 명령이 시작이었다-김가부장에 따르면 "요이 땅"이었다-. 벌써 1년전부터 상주하다시피하던 합병전문 로펌의 인사들 때문에 합병은 기정사실이었지만, 사장이 3개월 이후 합병 성사를 외치면서부터는 직원이나 외부인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개월 합병 성사라니. 직원 사이에서 자신 없는 50대나 40대 후반의 약골들로서는 벌써부터 자리보전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야심가들은 또 나름대로 자신의 라인을 대느라 바빴다. 중소기업끼리의 조그만 합병인데도 경제신문 몇 곳에서는 중요 기사로 송고하기까지 했을 만큼, 이 합병은 화제였다.

승현으로서는 불안함 보다는 호기심이 더 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서둘러 합병한다는 말인가? 만약 물밑 작업을 좀 더 끌고, 제대로 공개적으로 합병한다면 보다 주가도 끌어올릴 수 있는 터였다. 주가만인가. 직원들과의 협상도 좀 더 부드럽게 이루어질 일이다. 지금은 벌써부터 중소기업인 현무건설에는 난데없던 노조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노조같은 조직은 대학시절 운동권 경력이 좀 있는 소수의 직원들이 만들려고 늘상 애쓰던 바였지만, 3개월전부터는 몰라보게 커지고 있었다. 직원들의 불안함이 노조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2개월 전 그는 사장에게 불려갔던 것이다. 막 노조가 1층 로비 벽면에다가 "직원복지보장없는일방합병반대한다"는 요지의 붉은 글씨의 '대자보'를 붙이고 있는 날이였다.

"사장님 호출로 왔습니다. 백승현 인사팀장입니다."

"잠시만요"

사장의 비서는 이름은 모르지만 으례 중소기업의 사장 비서가 그렇듯이 꽤 괜찮은 미모를 자랑했다. 그렇다고 절색. 그러니까 나라를 기울인다는 의미의, '경국지색'같은 축은 못되었다. 그보다는 수수한, 그러니까 딱 사장의 세컨드로 적당할 정도의 그런 미모였다. 부담스럽지 않지만, 경박하지는 않은. 하지만 그렇다고 고급스럽지도 않은 그런 취미 그런 미모 그런 머리칼이나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여자였다. 일처리는 어떠지 모르겠지만 5년전 승현이 다른 건설회사로부터 스카우트 되기 전부터 이미 이 여자는 이 갈색 비서실 책상을 꽤차고 있었다. 그만큼 실세라는 뜻이리라.

"들어오시랍니다."
잠시 사장실에 들어갔던 그녀가 빈 쟁반을 가지고 나오면서 말한다. 위에는 찻잔 3개가 들려 있었다. 하얀 색 도자기인 찻잔에는 반쯤 먹다 만 녹차 티백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몇 대의 꽁초가 담긴 금속성의 재털이도 있었다. 승현은 잠시 그녀가 나와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아아. 백군. 앉게."

"네."

빈 찻잔을 들고 나오길래 승현은 누군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장은 혼자였다.

"다른 게 아니고 말이지. 자네도 지금 회사가 바쁜 상태라는 건 잘 알겠지?"

"네. 합병 이후로 무척 일이 많아 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사실 많아졌다기보다는 복잡해졌지."

"네. 노조도 있고 말입니다."

승현은 아마도 노조때문에 오늘 사장에게 불려왔다고 생각했다. 노조는 어느 회사에서나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고, 이 현무건설을 몇십년만에 수백억대 이상의 순이익으로 불려왔다는 사장의 수완에 따르면 노조에 대해서도 각별한 대책이 있을 터였다. 아마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짖밟는가 하는 수순이겠지. 하고 승현은 생각했다.

"아니 아니."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노조는 아니고 말이네. 별 힘도 없는 이들 때문에 인사과가 괜히 힘을 쓸 필요는 없어. 알아서 할 테니."

이 한마디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인사과가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마도 노조 주동자들에 대한 인사과의 감시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사과가 아니면 누가 알아서 한다는 것인가. 승현은 아마도 1개월 전부터 합병과 동시에 구성된 합병위원회를 생각했다. 전쟁시의 여느 특수기관이 그렇듯이, 이 합병위원회도 불가사의할 뿐만 아니라 무소불능의 막강한 조직이었다. 한 마디로 못 하는 일이 없지만,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누가 속해있는지도 모르는 한 치 앞이 캄캄한 조직이다.

"네."
승현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겨우 답했다. 의외의 상황에 승현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신입때는 고생도 좀 했었지만, 또 나름대로 영 틀린 대답은 피해오기도 했다.

"음. 사실은 그보다는 합병 그 자체 때문에 자네를 불렀네. 자네가 합병위원회에 조인해 주었으면 해서 말이지."

"네?"

너무나 의외의 요청이었다.
그리고 3개월 후 승현은 그 요청이 너무나 막대한 것이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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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 있는 동영상 하나를 소개한다.
풍부한 비평의 가능성을 지니며, 무엇보다 아름답다.

위 동영상의 휴대폰에서 뛰쳐나오는 대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동영상의 제목인 "Cell Phones Are Evil"이라는 말대로 일종 '악'의 대상으로 표현되었다고 보인다. 그 대상은 아마도 '악마'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흥미로운 지점은 악마를 불러들이는 의미에서 <파우스트>의 마술적 부적이나 '문지방' 또는 '솔로몬의 별'이라는 제단1)(하단 설명을 참조), 혹은 악을 정화하기 위해 일단 필요한 과정으로서 '악의 노출'의 제단이 "전자렌지"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일단 재치 있는 동영상이다. 일상공간(생활공간)과 '악' 또는 '선' 따위의 절대 속성을 연결짓는 것은 많은 필름 작업들에 있어 지속되어왔지만, 이만큼 재치있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착신아리"라는 영화가 성공적으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일상 생활의 사물이 성공적으로 '악'이라는 속성에 개입했다는 이유가 자리 한다. 말하자면 '핸드폰'이라는 영혼 없는 사물에 '영혼'이 깃든 현상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또는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 그것은 매우 '소름끼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위의 짧은 (아마도 정교하게 짜여진 마케팅 전략 상 하나일 것인) 동영상 역시 이런 점에서 꽤 성공적이다. 이 동영상은 일단 비평의 여유를 많이 지닌다. 동영상 자체가 현대 사회에 대한 하나의 '우화'라고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부하게 이 동영상 자체를 이지적으로 뜯어보기 보다는, 이 동영상이 주는 직감적인 섬뜩한 혹은 어떤 '위트'에 귀를 기울여봄이 더 만족스럽다.2) 솔직히 말해서 처음 보았을때부터, 감상자가 수용하는 감정은 어떤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웃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위의 동영상에 깃든 감정이나 의도를 파악할 때, '페티시즘' 즉 '물신주의'3)를 떠올려 보는 것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혼 없는 사물'에 깃들리게 한 '영혼'이라는 관념에서 플라톤주의의 뒤집음을, 즉 이데아를 갖추지 못할 고립된 사물로부터 진정한 '악'따위의 순수성을 소환해내는 이 기막힌 연극을, 우리는 우선 지독한 이분법주의에 대한 재치있는 희극으로 받아들여도(말하자면 현대판 <구름>4)따위로 받아들인다 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위의 일상 사물(전자렌지, 휴대폰)은 벤야민이 말하는 바 '골렘'이 되어버린다. 마술적인 부적을 붙임으로써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되어버리는 '골렘'의 맥락으로부터, 현대 사회가 풍자받는 바는, 사물에 투영된(라캉에 의한다면 미끄러지는) 인간의 욕망/시선과 그리고 그것의 불가능함(따라서 섬뜩함이나(호러) 웃음(코메디))이 어울러져 만들어내는 건널 수 없는 극간, 그리고 그 사이를 관조하는 웃음과 다르지 않다.

사실 이런 생각을 모두 하고서 동영상을 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말하자면 작은 증상(symtom)으로부터, 우리가 지닌 작은 감적의 균열로부터, 우리 스스로의 감정 회로들을 짚어 보고 즐기는 일은 유쾌할 뿐만 아니라 유익하다.5)



1) 괴테가 적은 걸작 <파우스트>의 초반부는 온갖 연금술적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괴테라고 한다면 특히 <젊음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인해서 낭만주의자로만 여겨지기 쉽지만, 연금술에 미친 박학다식한 신비주의자로서의 괴테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괴테는 특히 매력적이다. 마치 사과주를 두 잔 정도 머금은 후의 대문호와 만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온갖 학적 탐구 끝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한다. '악'의 소환술이다.

2) 공포영화에 '위트' '코믹' 또는 '희극' 따위의 수사를 붙이는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공포영화의 핵심은 '위트'이고 '풍자'이다. 반드시 이러한 입장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어영화' 중 한 분과인 '스플래터영화'에 대해 "스플래터는 과장된 폭력을 바탕으로 코믹함을 유추해낸다."고 말한 Eckhard Hammel의 해석을 인용하고 있는 문서를 인용한다. http://arborday.egloos.com/1664561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중 "'고어'의 의미 -3부- (스플래터, 고어영화)")

3) 물신주의(Fetishism). 특히 페티시즘 이라는 단어는 요새 들어와 단지 '성적 집착증'으로 사용되는 모양이지만, 그러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으나, 반드시 그러한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이 페티시즘, 또는 물신주의로 번역되는 단어는, Karl Marx 즉 우리가 흔히 맑스로 쓰는 맑스 선생이 <자본론>을 비롯한 여러 문건에서 언급한 이후, 프랑스 현대 맑시즘을 대표하는 알튀세르-라캉으로 이어져 프로이트 정신 분석학과 결합되면서 그 의미를 확장하게 된, 엄밀한 '철학적 개념'에 속한다. 맑스는 <자본론>제 1권의 4부에 "The Fetishism of Commodities and The Secret Thereof" 즉 "(일)상품의 페티시즘과 그것의 신비"라는 제목을 두고 이 문제를 언급한다. 내용은 사용가치(사용하기 위해 사물이 지니는 가치)만을 지니던 상품이 교환가치를 지니면서(이러한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법정통화' 즉 '돈'이다) 어떤 신비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The mystical character of commodities does not originate, therefore, in their use value."라고 맑스는 말한다.

4)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로 풍자, 비판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을 가리킨다.


* '증상' 등의 개념은 라캉을 해석하는 지젝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Posted by Affectio
-그런건 의미 없어. 결국 스스로 저지른 칼에 제 몸을 뉘운 꼴이지 뭐야. 제기. 재수가 없으려니깐 이 따위 일이 일어나고야 만 거야. 대체 그 자식 어떻게 그 따위 짓을 한담 말야.

2003년 여름
어느 저녁 날. 대책회의 중인 사람들 앞에서 작은 살인이 벌어졌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어떤 아저씨가 털털 걸어와서는 자기 허벅지부터 시작해서 자기 가슴팍에 이른 큰 찌른 상처를 내고서 쓰러졌을 뿐이다. 아니. 그렇다. 그러니까 별로 범인은 없었던 것이다. 거창한 플레쉬 라이트도 없었고, 현장 검문도 없었다. 으레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 그러한 종류의 범행 재현도 없었다. 죽은 자는 담담하게 붉은 땅에 뉘여 있었을 뿐이다.

제기 제기 제기 제기.
탁과장은 외친다. 그렇다. '탁'이라는 이름은 흔치 않지만 그 덕택인지 그는 그럭저럭 빠른 승진을 해 왔다. 5급 사무관이라는 자리는 만만치 않지만, 사실 그 뒤도 역시 만만치 않다. 그는 중신이 되고 싶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상相'이니 '경卿'이니 하는 이름을 지워 줬다. 그의 어깨에 밖히도록 전통이라는 이름의 이름자들이 꽤나 그의 인생을 좌우했던 것일까. 어쨌든 탁과장은 그랬다. 그는 '제기 제기'하고 챗챗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꽤나 잘 나가던 인생탄로였다.

아니 꼭 그렇다고 단정하지도 못할 것 같다. 지난 주 탁과장이 장 국장에게 소주를 기울이면서 넥타이를 머리에 상모 틀듯이 휘두를때만 해도 괜찮았다. 사실, 그는 (그러니까 탁 과장은) 괜찮다고 느꼈던 것이리라. 배가 튀어나온 돼지들이 룸쌀롱에서 머리를 흔들면서 미친듯이 아가씨들을 휘두르는 장면은 사실 그다지 호감가는 구경이 못된다. 그러니까 '괜찮았다고 느꼈다'는 애매한 어투로 가리고는 한다. 다음 날 아침 늦게 나올 수 없어 무거워진 배게와 머리의 끈적거림을 뒤로 하고서는, 여전히 그는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휘청거렸던 것이다.

어쨌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들이 흔히 징조를 알지 못하면서도 막연히 불안해 한다는 사실은 안다. 그랬다. 탁과장도 무언가 모를 불안감에 싸여 있었다. 여느 때와 같았는데도 말이다. 이야말로 동물로서 가진 인간의 가장 위대한-어쩌면 마지막의-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 때 탁과장 역시 쥐때같이 어두운 하수구로 달려들고 싶었다. 무언가 심상찮은 진동이 욱욱 거리면서 속에서 튀어 나왔다. 거대한 진앙이 멀지 않았다. 새벽이 멀지 않았다. 아니라면 그는 지나치게 가까히 불에 다가선 타버리고 있는 자신의 날개를 채 발견도 못하고서는 이제 악 소리를 내기 직전에 처한 작은 나방이었다.

별 일은 없었다. 화요일이었다. 오전이었고. '먼데이 블루'를 겪고서는 살아남았다. 오늘도 붐비는 교통을 뒤로 하며 행복하게 나왔다. 오른 손에는 늘 들고 다니던 토익 단어장으로 땀방울을 식히고 있었다. 휠렁휠렁하는 양복 가에는 오래 전부터 지워 지지 않은 먼지와 위스키의 흔적이 훈증같이 냄새를 남겼다. 아니, 그렇다고 악취도 아니다. 오래 전부터 그는 악취를 숨기는 방법에 통달해 있었다. 오늘 같은 날 짙은 향수를 뿌린 채로 집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듯 했지만, 하지만 실상은 아무도 바라 보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이다.

날씨는 더웠다.
세 시부터 줄곧 대책회의가 이어졌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일은 매일 매일 있다는데 힘든 건 공무원일 뿐이라고, 탁과장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장차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서는 장관 옆에서 연신 땀을 닦아가며 심부름에 열중했다. 이런 서류뭉치와 저런 서류뭉치를 무릎과 바닥과 어깨와 허리로 받쳐가며 옮긴다. 더욱 열심히 하는 듯이 그는 몸집을 과장되게 움직인다. 그의 말투는 흔히 듣는 스팸 전화 속의 여인 같다. 사근 사근. 그는 말한다. '네~ 장관님~'하고 그는 외친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 악취미에 속하는 건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계산적일 뿐이다. 행복한 사람일 뿐이다. 정확하게 말해도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일 뿐이다.

날씨는 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사'는 언제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웠다. 그렇다 탁과장은 미칠듯이 더웠던 것이다. 왜 이렇게 더운 걸까. 그렇다. 저 죽일놈이 저렇듯 붉은 색으로 땅과 벽을 칠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그는 변명했다. 저 미친놈. 저 죽일놈. 저 씨부랄놈 때문야. 그는 자위했다. 이제 뿜어낼 정액도 없지만, 여전히 그는 머리 속의 마른 모든 엔돌핀을 짜낼 듯이 자위했다. 머리를 움직였다. 벙벙했지만 여전히 5급 사무관의 뛰어난 머리가 아닌가. 나는 엘리트가 아닌가. 이 사회의 최고 관리가 아닌가. 그는 뛰어났다. 탁월했다. 모두가 자신과 같은 폰-마케터의 여성 목소리로 '끼르르 끼르르' 하고 웃으면서 '아~ 과장님~~~' 혹은 '아~ 장관님~~'하고 부르기를 원했을 뿐이다.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결국 그는 그 순간 핏대를 세우며 자신의 무죄함을 자신의 뇌리에서 자신만의 법정에서 호소하고 있었다. 더운 날이었는데도 말이다. 거대한 수고였다.

날씨는 더웠다.


-20()()-7-20- 연합뉴스-
날씨가 더웠습니다. 오늘 과천 정부 청사에서는 연일 계속되던 항의 시위가 계속되던 중 시위대가 청사 내로 난입하여 결국 시위대의 한 사람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작은 면도칼을 팔목에 숨기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회의장의 벽과 바닥에 남아있는 븕은 핏자국이 참혹했던 현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체감기온이 38도에 이르는 살인적인 더위 가운데 이미 20명에 가까운 시위대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물과 화장실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대해 정부 청사가 문을 굳게 닫는 것이 오늘의 참극을 불러온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회의에 참여했고 본 사태에 대한 사후 처리를 맡고 있는 건설관리과의 탁 과장은 "전경은 청사 내의 공무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절차를 밟았을 뿐이다."라고 평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시위대에 대해 심심한 유감의 말씀을 전하며 이러한 불상사가 없도록 더욱 국민의 종복으로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계속되는 현재의 시위는 공무원의 수를 감축하고 20()() 즉 올해 초부터 즉시 공무원의 채용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대통령령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약 25만에 가까운 공무원 시험 준비생, 속칭 공시생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달 헌법재판소에서는 본 대통령령에 대한 헌법소원을 기각했습니다. 현재 약 2000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과천 정부 청사 앞에 모여 있지만 인원은 정부 측의 단호한 의지와 비협조적인 여론 속에서 확연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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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료좀  내립시다 서명중~~~~~~                                         this0286 0 0 07.20. 23:08
천벌받아라[1]                                                                       purr6762 9 0 07.20. 23:05
뭐든지 남탓....                                                                      knuusay 3 0 07.20. 22:57
야당 뭔데[1]                                                                         phyg062 27 1 07.20. 22:34
아 진짜 민생안 좀 처리하자.                                                    cdkf4ka 5 0 07.20. 22:27
공무원 ㅅㅂ 웃긴다[12]                                                          schuung84 68 2 07.20. 21:51
ㅋㅋㅋ 과연 공무원 ㅅㄲ들이다                                                dkl4550 21 1 07.20. 21:38
그럼그렇지...                                                                        myfree10 14 1 07.20. 20:56
역시                                                                                    e1000 13 3 07.20. 20:20
미국이 공무원 짜르는 까닭                                                      cagllerya 56 1 07.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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